테드 창(Ted Chiang)의 단편 소설인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The Lifecycle of Software Objects)"의 주인공 애나는 소프트웨어 관련 직군으로 취업하기 위해 구직활동 중이지만 면접에 가기도 어렵고, 가도 취소되어 낙담한다. 그러던 중 친구인 로빈이 자신이 신규 투자를 유치한 스타트업에서 직원을 뽑고 있다며 지원을 권한다.
그 스타트업은 디지언트(Digient)라는 디지털 생명체를 만드는 회사로, 뉴로블라스트(Neuroblast)라는 지놈엔진을 개발하여 디지언트의 인지 발달을 급진적으로 이끌었다.
애나의 이전 직업은 '동물원 사육사'였다. 로빈은 바로 그 점 때문에 그 스타트업에서 애나에게 관심이 있다고 말한다.
융합 전공을 하다보면 정체성에 대한 고민과 더불어 진로에 대한 고민도 깊게 하게 된다.
이론 지식(domain knowledge)에 대한 영역을 키워야 하는지,
방법론적인 기술이나 수준을 높여야 하는지,
연구직을 할 것인지, 기업에 취업을 할 것인지, 그렇다면 어떤 점을 나의 강점으로 주장하고 보여주어야 하는지 말이다.
예를 들어, 생물정보학을 전공한다면 그 안에서 암과 같은 구체적인 질환, 신약 분야, 진단 분야, 치료 분야 등
이론 지식을 어느 분야로 세분화하여 전문성을 가질 것인지 고민하는 시점이 있을 것이다.
아니면 진단에 있어 사용할 수 있는 여러가지 데이터들(영상, 신호, 인체 유래물 등)과 관련 분석 방법들, 통계, 임상 등
문제 해결에 활용할 수 있는 어떤 기술을 특화하여 잘 다룰지도 결정을 해야 나아갈 수 있다.
흔히 융합 전문가의 역할은 전문가와 전문가 사이의 소통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이라고들 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일을 하다보면 융합이 필요한 일은 분야의 전문가가 할 일을 1/N으로 나누고 이를 통합한다고 진행되지 않는다. A 전문가가 B에 대해 지식을 쌓아가고, B 전문가는 A에 대해 지식을 쌓아가면서 문제를 해결하는 방향을 제대로 작동하는 경우가 많고, 시간과 비용(정신을 포함한 여러 의미로)을 많이 요하는 과정이다.
다시 말하면, 융합 전문가(연구자)는 A 분야의 1/2을 알고, B 분야의 1/2를 아는 것이 아니라,
A 분야도 전문가만큼 알고, B 분야도 전문가 만큼 알기 때문에 소통의 매개가 가능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그렇기 때문에 일이 많을 수도 있다.
정신적으로, 관계적으로, 물리적인 일 자체도로!
이 과정을 남들과 똑같은 시간 내에 이루는 것이 가능할까?
물론 개인의 역량에 따라 가능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애나'처럼 경험의 축적이 지름길이 되어줄 수도 있고, 틈새 기회가 되어 주기도 한다.
그러니 많이 경험하고 공부할 각오를 해두는 것이 좋다고 말하고 싶다.
공부를 정말 좋아하고 배우고 익히는 것에 욕심이 있다면,
융합 학문은 장점이 많은 학문이다.
일단 물리적으로 정말 아는 것이 많아지고, 할 줄 아는 것도 많아지니까!
A를 충분히 키우고 B라는 살을 붙여 나가든,
A와 B를 병렬로 진행하거나 교차적으로 진행하든,
그것은 개인의 능력, 선호도, 입장, 환경에 따라 다 다를 것이다.
그러나 성실하게 진행했을 때 믿을만 한 융합 연구자가 되어 있을 것이다.
그러니 경험을 잘 이용해 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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